오늘은 영화 <어느 가족>를 보고 느낀 '젠더적 모습'과 '가족 가치관'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1. [어느 가족]은 어떤 영화인가?
영화[어느 가족]은 고레에다 히로 키즈 감독이 연출한 2018년 칸영화제 최고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고레에다 히로키즈 감독이 어느 날 우연히 연금 사기 사건의 기사를 보게 되었고 혈연이 아닌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들어 봐야겠다고 결심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일본 사회 가족의 문제점을 [어느 가족]이라는 영화로 표현하였습니다.
건설현장에서 일을 하다 다리를 다쳐도 산재보험조차 받지 못하는 열악한 건설회사 현장 일용직 근무를 하며 살고 있는 아버지 오사무. 친자녀들도 아닌데 아이들을 살갑게 대하고 아들 쇼타에겐 인생 선배로서의 조언도 아끼지 않으며 ‘아버지’‘아버지’ 소리를 듣고 싶어 합니다.
세탁 회사에서 근무하며 가끔 고객들의 세탁물에서 물건을 훔쳐 그 물건을 가족들에게 주는 어머니 노부야. 가정폭력의 희생자로, 학대당하고 버려진 아이들을 따뜻하게 챙깁니다. 같은 회사 동료의 아픈 사정을 이해하고 자기가 회사를 그만 둘 정도의 의리도 있습니다.
아버지 오사무에게 배운 기술로 학교는 가지 않고 생필품을 훔치고 다니는 소년 쇼타. 도박에 빠진 부모에게 방치당한 소년을 오사무가 데리고 왔습니다. 아버지 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 오사무에게 깊은 정이 들지만 쉽게 아버지 소리가 나오지 않습니다. 새로 생긴 동생 유리에게 도둑질을 시키고 싶어 하지 않는 친오빠 같은 모습을 보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소녀 아키. 일터에서 진상고객들을 만나기도 하지만 집에 와서 할머니의 다리를 베고 누워 까르르 거리면 모든 것이 좋아집니다.
이런 이들을 따뜻하게 반겨주며 상냥히 챙겨주는 할머니 하츠메. 소박하지만 따뜻하고 정갈한 음식을 해서 가족들이 빙 둘러앉아 먹을 수 있게 합니다. 진짜 가족들에겐 버려졌지만 진짜 같은 가짜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행복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겉으로 보기엔 가족처럼 보이지만 할머니 하츠메의 연금으로 하루하루 생활하며 살아가고 있는 각자가 혈연이 아닌 생판 남인 사람들입니다. 돈이라는 매개체로 함께 살게 되었고 밖에서 보기에는 사회적 문제가 많은 것으로 보이지만 집에 모이면 같이 요리를 해서 밥을 먹고 아이를 씻기고 서로에게 장난도 치는 화목한 가족입니다.
2.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바닷>, << 마을 다이어리>, <그렇게>, << 아버지가 된다>등 재미있고 감명 깊게 본 영화들을 연출한 감독이자 세계적인 거장 고레에다 히로 키즈 감독의 영화라 서슴없이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이 감독의 영화는 가족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시대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력으로 관객에게 사랑받으며 가족과 사회 그리고 그 구성원들의 역할에 대해서 우리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오래 기억되기 때문입니다.
3. 가족 구성원의 구체적 분석
(1) 인물의 가치관
아버지 오사무 : 도둑질 말고는 아들에게 가르칠 게 없는 아빠. 아들을 학교에 못 보내는 아빠. 하지만 잘 놀아주고 아버지로서 아들에게 조언도 아끼지 않는 아빠. 가족의 부양을 위해 노동현장을 달려가나 거기서 입은 피해에 대해 강력히 주장하지 못하는 아빠. 이런 아빠는 좋은 아빠인가 나쁜 아빠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남에게 크게 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자신들의 소소한 삶을 이어 나가고 강자 앞이나 사회 법률과 원칙 앞에서는 한없이 왜소해지는 인물입니다.
어머니 노부야 : 가정폭력의 희생자. 그래서 상처 입은 사람들에게 더 관대합니다. 직장 내에서의 부조리한 일에 대해 당당하게 맞서지만 아픈 아이가 있는 다른 동료를 위해 물러설 줄도 압니다. 쇼타의 부상으로 인해 가족의 실체가 드러나자 자기는 이미 전과가 있고 아이들을 돌볼 사람이 필요하다며 자기가 자수하고 감옥에 들어갑니다. 자신보다 약한 사람들을 품어주고 자신이 낳은 아이들은 아니지만 끝까지 지켜주고 싶어 합니다.
할머니 하즈 메: 진짜 가족들에겐 버림받고 진짜 같은 가짜 가족들을 보살피며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남편의 외도로 고통받았지만 그 남편의 연금과 내연녀의 손녀를 돌보고 양육비를 받아 챙깁니다. 약한 것 같지만 강인합니다. 현실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나이 많은 여자 같으나 실리를 놓치지는 않습니다. 내 옆에서 나와 같이 밥 먹고 자는 것이 진짜 가족이라는 생각을 갖고 그들 옆에서 행복하게 눈을 감습니다.
(2) 젠더적 모습
아버지 오사무 : 옳지는 않지만 마트에서 생필품을 훔치고 다리를 다치면서까지 공사장에서 일하여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려 합니다. 남자로서의 젠더적인 모습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또한 아내를 잘 이해해 주고 성관계를 나누며 남성성을 확인합니다. 쇼타에게 남성의 2차 성징 얘기를 하며 잘 성장하고 있다고 다독이는 모습에서 또한 남성이 아버지로서 해야 할 역할을 제대로 인지하고 실행하고 있습니다.
어머니 노부야 : 오사무를 만나기 전에 노부야는 수동적이고 소극적이며 나약하고 주변에 흘러가는 대로 자신의 인생을 맡겨버리는 무능력한 여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오사무랑 함께 살며 아이들을 데려다 키우면서는 변화된 모습을 보입니다. 세탁공장에서 노동력을 제공하는 일로 당당하게 먹고살며 다른 동료의 비리에 목소리를 낼 줄도 알며 힘든 상황에 처한 동료를 위해 희생할 줄도 압니다. 또한 자기의 자녀들을 지키기 위하여 일자리를 놓고 거래를 하기도 합니다. 유리를 데려온 후 유괴이니 다시 데려다 놓자는 가족들의 의견에 유리의 의견을 듣고 정하자고 합니다. 자기 삶의 방향을 본인이 직접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주체성이 발현됩니다. 가족의 정체가 드러나자 자기는 전과가 있고 아이들을 돌볼 사람이 필요하니 자신이 감옥에 가는 걸 선택합니다. 아이들을 지키려는 모서의 발현이며 한 남자를 사랑하는 여성의 능동적인 선택이었습니다. 노부야는 새로운 가족을 만나면서 수동적이며 무능력한 기존의 여성성을 벗고 강인하고 능동적이며 진취적인 여성의 모습으로 거듭납니다. 한 여성에서 어머니로의 젠더의 역할이 변화합니다.
(3) 가족갈등이나 문제 및 그 해결방법
이 영화에서는 오사무와 노부야가 이룬 가정에서 가족 간의 갈등은 크게 보이지 않습니다. 모두가 결핍이 있는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서로 보듬고 살뿐입니다. 그러나 각 인물들이 처했던 가정환경에서는 갈등의 연속과 정점을 찍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노부야는 남편의 가정폭력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다가 술집에 나가 일을 하게 되었고 거기에서 오사무를 만나게 됩니다. 영화에서는 노부야가 술집에 나가게 된 계기가 상세히 나와 있지는 않아 그저 짐작하게 할 따름입니다. 여자이고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남편에게 폭행을 당하는 노부야. 오사무와의 관계가 밝혀지자 그 폭력은 정점에 달하고 그 상황에서 노부야의 선택은 남편을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남편을 죽이고 마당에 묻습니다.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노부야가 남편을 죽이는 건 우발적으로 보이나 실은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상당히 오랜 기간 지속된 폭력에 울분이 쌓이고 쌓여서 그것이 폭발한 것이리라.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든 폭력을 대하는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노부야가 주변에 도움을 청하고 좀 더 적극적으로 해결해 보려고 했다면 어땠을까요? 가정폭력 피해 여성을 위한 신고제도와 쉼터 등이 마련되어 있을 텐데 말입니다. 쇼타와 유리는 부모의 무관심과 방임으로 버려지다시피 한 아이들입니다. 어린 이들은 그 문제를 주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었고 결국 오사무와 노부야가 데려와 키웠습니다. 가정폭력의 어린 희생자들은 결국 주변 사람들과 이웃 사회가 해결해 줄 수밖에 없습니다.
(4) 영화 속 인물과 사건 등에서 유의할 점
오사무가 쇼타에게 도둑질을 가르치고 둘이 같이 도둑질을 하는 것과 문구점 할아버지가 쇼타의 도둑질을 알면서도 눈감아주는 것이 절도 행위에 대한 미화처럼 보여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한 쇼타와 유리라는 아동을 부모 허락도 없이 데리고 가서 키우는 행위는 아무리 선의에 의한 것일지라 해도 아동유괴라는 범죄행위의 범주를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미성년자인 아키가 성인업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 또한 이해하기 어려운 설정입니다.
4. 후기
(1) 바람직한 가족의 모습
<이상한 정상가족>(김희경 저. 동아시아 출판)이라는 책에서 보면 현대의 가족 형태는 기존의 가족 형태와 많이 달라 얼핏 보면 이상한 가족으로 보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이상한 가족이 이젠 정상가족이라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가족 또한 그렇습니다. 결혼과 혼인, 출산으로 이루어진 가족은 아니지만 아버지는 아들에게 다정다감하며 어머니는 동물적인 본능으로 아이들을 감쌉니다. 자녀들은 그런 부모의 노고를 알고 그 안에서 안정을 느끼고 행복해해합니다.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기운이 팽배한 현대사회에서 가족만큼은, 가족 안에서 만큼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바깥에서 지친 몸뿐만이 아니라 지친 마음까지도 편히 쉴 곳이 가족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우리는 내일 또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테니까요.
(2) 나와 가족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방법
나와 가족이 함께 행복할 수 있으려면 우선 경제적인 안정이 필요할 것입니다. 가족이 경제적인 안정을 얻기 위해선 각자의 역할에 충실해야 할 것입니다. 아버지 어머니 누구 하나의 희생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경제라는 삶의 무게를 함께 나눠진다는 의식이 필요할 것입니다. 또한 아버지 어머니 딸 아들이라는 전통적 젠더의 역할에 함몰될 것이 아니라 그 고정관념을 탈피해 각자 잘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가족의 문제가 가족 안에서 해결할 수 없을 땐 이웃과 지역사회에 손을 내밀 줄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가족 구성원 모두가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들인지 깨닫고 삶에 적극적인 자세로 임할 때 내가 행복하고 가족 모두가 행복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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